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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영원 - Eternity

by 오네시모 2021.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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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경험할 수 없을뿐더러 상상 불가능한 개념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영원을 말합니다.

 

연인들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친구들은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리!"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영원'은 아무도 본 적도, 들은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영원'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서 '영원'이라는 개념을 배운 것일까요?

 

영원은 실재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영원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도 영원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는 가장 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자신이 본 사진 한 장을 언급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 속에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

 

하나님이 만약 비를 허락하셨다면 그 아이는 죽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비를 내릴 능력이 없는 분이거나 비를 내릴 수 있는데도 비를 내리지 않고 그 아이가 죽는 것을 방조하셨다. 어느 이유든지 그런 하나님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기쁨과 축복이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완벽한 세상이 저주를 받게 된 것은 바로 첫 사람 아담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죄로 인해 저주받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기로 계획하고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부활의 소망을 확증하신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을 고려하지 않고 이 세상이 전부이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분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계시는 삼층천(셋째 하늘)을 본 후에 이 땅에 자신의 육신에 머물러 사는 것보다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첫 번째 순교자였던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 천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은 만약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고 설파합니다.

 

엄마의 품에 죽은 아이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에서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상상할 수 없는 극락의 천국에서 누구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바로 주님이 준비하신 극락의 영원한 천국에서 하루 더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장례식장은 영원한 이별이 아닌 잠시 후의 재회에 대한 소망으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설렘이 넘치는 것입니다.

 

'영원'이 실제 존재하기에 우리는 '영원'을 노래하고 '영원'을 고대합니다. 

 

'영원'이 있기에 이 세상의 죽음은 비극이 아닌 영원한 하늘나라로 옮겨가는 순간의 관문일 뿐입니다.

 

이 세상의 우리의 삶도 '영원'과 연결이 되어 있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이 없다면 동물보다 하나도 나을 것도 없는 의미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영원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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