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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선교사의 영어 좌충우돌기(左衝右突紀)

8.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다

by 오네시모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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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에 학교 정문 앞에서 영어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사람들이 많이 보였던 때가 있었다. 아마 복제판이었을 것 같은데 "Michigan Action English"등과 같은 영어 학습 테이프였다. 대학 입학 후에 영어 공부가 필수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영어가 취직과 학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 암묵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영어 점수를 어떤 방식으로든 올려야 했고 영어 실력으로 그 사람의 실력이 드러났다. 인도에 가 보니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인도는 영어로 수업을 듣는 "English medium"의 학교도 많고 기본적으로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의 격차가 있어서 세련된 영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시장에서는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의 영어 실력을 보면 대략 집안의 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어가 짐이다. 영어가 수학처럼 끔찍하게 하기 싫은데 할 수밖에 없는 과목이 되어 버린다. 내가 수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계인을 쳐다보듯이 바라본다. 하지만 수학이 얼마나 아름답고 재미있는지 설명할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다. 이런 경험 후로는 더 이상 수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한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를 하는 사람 옆에 앉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안타까운 일인지 안다. 한 번은 칠레에 가서 선교를 하는데 옆에 앉은 사람에게 영어를 해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람의 스페인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로 포기하고 조용히 말없이 앉아있는데 고역이었다. 옆에 앉아 있는데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니.

 

영어를 시험 성적이 아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다시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한다. 영어의 세련된 발음은 물론 명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발음으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때로는 단어 하나만 적재적소에 말해도 모든 것이 풀린다. 시험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완벽한 문법을 추구하게 된다. 문제는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영어로 부족해서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해도 서로 이해를 하면 문제가 없다. 물론 영어를 향상해 손발이 필요 없으면 더 좋지만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이 되면 영어 사용의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시험에서는 거의 만점을 받으면서도 정작 외국인 앞에서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영어를 하는 사람일까, 못하는 사람일까? 의사소통이 안 되면 0점 영어이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고 할 말이 없으면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렇기에 함께 일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목적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온다. 나에게는 인도 선교사의 사역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향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인도에 있을 때는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영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한 번은 사이클 릭샤 - 자전거 뒤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로 사람을 나르는 교통 수다 - 를 타는데 앞에서 자전거를 끄는 아저씨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40도 가까운 온도에 꽤 무게가 나가는 승객을 싣고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데 뒤에서 보니 땀이 흥건히 젖었다. 그래서 20루피 (한화 약 300원 정도)의 운임의 두 배인 40루피를 주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을 안 하는 것이었다. 몇 번 같은 일을 경험한 후에 궁금해서 인도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인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적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에 40루피를 준 내가 그 사이클 릭샤 운전사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도저히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힌두교의 윤회 가르침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가게에 가면 구석에 언제나 '가네쉬' 신상이 있고 가게 주인이 출근을 하면 향을 피우는 의식과 함께 그 앞에 절을 한다. 하도 궁금해서 왜 가네쉬는 사람 몸에 코끼리 머리를 하고 있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 다른 설이 있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는 가네쉬가 아빠 신, 엄마 신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엄마 신이 하루는 집에서 샤워를 하며 가네쉬에게 집 앞에 서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 신이 와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가네쉬가 엄마 신이 한 이야기를 하며 못 들어가게 하자 아빠 신이 화가 나서 가네쉬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 엄마 신이 나와 가네쉬가 죽은 것을 보고 슬퍼하자 아빠 신이 지상의 코끼리 머리를 베어 가네쉬 몸에 붙여서 다시 살렸다는 이야기이다. 전혀 근거가 없는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영어로 듣고 이해하고 질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런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영어이다. 영어가 많은 사람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영어를 사용하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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