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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선교사의 영어 좌충우돌기(左衝右突紀)

2. 게으른 뇌를 일깨워라

by 오네시모 202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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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게으르다. 그리고 이것이 외국어를 습득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길보다 가본 길, 새로운 일보다 익숙한 일, 새로운 장소보다 익숙한 장소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보자. 예전에 가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 지난번에 앉은 경험이 있는가? 지난번에 앉은자리에서 아무 문제없이 식사를 마쳤다면 뇌는 다른 생각 없이 그 자리를 선호한다. 도서관에 갔을 때 지난번에 앉아서 공부한 자리를 찾게 되는 이유도 같다. 특별히 문제가 없었다면 예전 그 자리가 좋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뇌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이름을 기억해야 하고, 소개를 해야 하고, 별로 관심이 없는 이야기에도 맞장구를 쳐야 한다.

 

필자도 박사 학위를 위해 미국 유학을 시작하기 전 약 6주간 어학연수를 참여한 적이 있다. 수학이라는 학과의 특성상 자연대학과 공과대학 학생들을 위해 조교(Teaching assistant)가 필요하기에 미국 대학에서 영어가 조금 모자라는 외국인 학생도 장학금을 주면서 조교로 사용했다. 그리고 영어로 인해 미국 학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학기 시작 전에 외국인 조교에게 영어를 먼저 가르쳤다. 어학연수에는 말하기, 쓰기, 읽기 등의 기본적인 내용을 가르쳤다. 문제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디를 가나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 수업 후에는 숙제 외에는 영어를 쓸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한국 사람들과 함께 한국 식당에 가서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말을 사용하니 뇌가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다. 그리고 게으른 뇌는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인도 아쌈주의 구와티에 도착한 뒤 구와티는 외국인이 거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아쌈 주는 인도 북동부에 있는 주인데 테러로 인해서 위험한 곳이었다. 한 번은 가장 붐비는 시작 중앙의 경찰서 앞에서 폭탄이 터져서 많은 사상자가 난 적도 있었다. 폭탄은 자전거에 묶여 있었다고 한다. 외국인이 없을뿐더러 인도에 간 첫 1년 반은 가족들이 비자 문제로 입국이 안 돼서 혼자 지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넷이 너무 느리고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지금처럼 연락이 쉽지 않았다. 가끔 선교 보고를 위해 한국에 전화를 하는데 10분 통화에 만 원  이상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혼자 떨어져서 한국말을 접할 수도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실은 이런 상황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상황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의 일상은 매일 2시간씩 인도 목회자를 내가 기거하는 숙소로 오라고 해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10여 년을 미국에 살았지만 교회 성도 대부분이 한국분이었기에 영어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인도에서 성경을 막상 가르치려고 하니 성경의 66권의 책이름도 제대로 발음하기가 힘들었다. 실은 한국 제목과 다른 성경은 책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애가"는 영어로 "Lamentations"이고 역대 상하는 "First and second Chronicles"이다. 게다가 "에스겔"서는 "Ezekiel"로 발음이 "이지키엘"이라는 생소한 발음이다. 사실 영어의 인명과 지명은 지금도 발음할 때 자신이 없다. 원어민도 실수를 종종 하기에 심지어 성경에 이름 옆에 발음 기호가 쓰여 있는 경우도 있다.

 

하루에 두 시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거의 네다섯 시간을 준비해야 했다. 더구나 사용하는 영어 성경이 New King James Version (NKJV)으로 영어 성경 중에 가장 어려운 축에 드는 번역본이었다. 직역으로 정확하게 번역된 성경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읽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번역이었다. 매일매일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나의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는지, 표현이 제대로 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도 사람의 힝글리쉬 (힌디어와 영어가 결합된 영어 발음과 표현) 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두 시간씩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극한 상황에 게으른 나의 뇌도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상황이면 슬슬 영어를 배워볼까?"

 

한국에서 영어를 배워도 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 잠깐 긴장하고 집중하지만 수업 시간 이후에는 영어를 쓸 이유가 없다면 뇌는 영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외국에 나가서 어학연수를 해도 이 사정이 그리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한국인이 많다. 그리고 어학연수에도 많은 한국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수업 후에 한국인끼리 어울려 다니며 한국어를 사용한다. 이런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영어가 늘 수 없다. 미국 유학 시절, 수학이라는 전공 탓에 영어보다 수식, 그리고 수학에서 사용하는 간단한 표현으로 영어가 늘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1년 동안 한국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며 한국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해서 영어만 사용한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말이 안 되고 괜찮다. 문법적으로 틀려도 괜찮다. 간단한 한국말도 영어로 표현하려면 뇌가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 영어가 향상된다.

 

인도에 있는 동안 한국 학생들을 6개월 또는 9개월 정도 와서 영어를 배우게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 머물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인도 현지인의 집에 함께 머물게 하였다. 인도식으로 한 반에 2~3명이 부대끼며 함께 먹고, 함께 시장도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한국인에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영어는 크게 향상이 되었다. 인도를 떠나면서는 작별 인사도 영어로 훌륭하게 하고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영어로 인사를 해야 하고, 아침을 먹으면서 잡담을 하고, 시장에 같이 가자고 약속을 하고,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영어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자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인은 한 명도 볼 수 없고 한국말을 쓸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그 극한 상황이 영어를 배우기에 최적의 상황이다.

 

가족이 없이 홀로 지낸 1년 반의 시간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기간 영어로 훈련을 시키고 영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가 향상이 되었다. 영어 성경에 익숙해지기 위해 영어 성경을 읽어주는 오디오 파일을 구해 밤에 자면서도 이어폰을 꽂고 자곤 했다. 그리고 영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풀어서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영어 표현들을 익혀야 했다. 한국어로 된 표현을 어떻게 영어로 옮겨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딱 맞는 표현을 들으면 나의 뇌는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영어 표현을 빨아드렸다. 영어가 느는 것이 하루하루 느낄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서울여자대학의 "SWELL"이라는 영어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어를 절대 금지한다고 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그래도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면 친구와 둘이 있을 때 무조건 영어를 쓰자고 약속할 수도 있다.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저절로 한국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다. 뇌가 '영어를 안 쓰면 나는 죽는다'라는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게으른 뇌는 긴장이 되고 급박한 상황이 되어야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럼 영어 한 번 배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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