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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

부활의 소망

by 오네시모 202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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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아담의 범죄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그 결과로 죽음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스펜서는 무신론자로서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갑자기 모든 사람이 죽을 운명이고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삶이 허무해지고 죽음이 너무나 두렵게 다가와 삶에 지장을 받기도 합니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고 걱정이 지나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을 "죽음공포증" 환자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이루어놓은 모든 것,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 쌓아놓은 지식과 재물 등은 죽음과 함께 나와 관계가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인생의 유일무이한 사건인 죽음에 대해 생각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혹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결코 절망과 단절이 아닌 희망을 주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든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소망을 전합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죽기를 무서워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비겁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친구를 배반하기도 하고, 남을 속여야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종노릇하는 모든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다시 사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기독교 전통을 가진 서양에서는 장례식 때에 관의 뚜껑을 반쯤 열고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보고 추념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부활을 믿기에 시신을 살아있을 때와 같이 멋있고 아름답게 꾸미고 가장 좋은 옷을 입혀 천국에서 다시 볼 소망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너무나 모순이 되는 말입니다. 확실히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바울처럼 이 땅에서 사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뵐 수 있는 그 날을 소망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들어가면서도 한 점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정복하고 죽음에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된 부활에 참예할 것을 믿기에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를 위해 약속된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천국을 믿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형제, 자매님들은 어떠신지요? 오늘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부활의 소망을 증거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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