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히브리서 11장은 우리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읽으며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의 죄와 실수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장에는 아브라함과 노아의 실수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모세의 살인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습니다. 기생 라합의 죄도, 삼손의 실수도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고 믿음으로 행했는 가가 그리스도인의 심판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기억지 않으십니다. 다만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받을 기회를 잃을 것입니다.
둘째, 신앙을 어떻게 마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많은 축복으로 시작했지만 말년의 우상숭배로 히브리서 11장에 이름을 올리지 못 했습니다. 반면에 삼손은 이방 여인을 좇는 거듭된 실수에도 불구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회개로 원수를 갚고 믿음장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시작했느냐 보다 어떻게 마쳤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끝까지 동참하지 못 해서 실패한 마가였지만 바울의 순교 직전에 기록한 디모데후서는 마가가 바울의 사역에 유익하다고 되어 있고 결국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영광된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그에 반해 바울과 함께 복음 전파에 동참했던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간 이후에는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시작할 때 확실한 복음으로 시작했다면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말세지말의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마치느냐는 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자가 얼룩말을 뒤쫓는 대결은 대부분 100~200미터 정도 달린 후에 결판이 납니다. 왜냐하면 사자등의 고양이과 동물들은 300미터 이상 전력질주를 하면 뇌혈관이 터질 수 있기에 더 이상 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
국 100~200미터를 달린 후에 10~20센티미터 차이로 사느냐 죽느냐는 운명이 갈릴 때가 많습니다. 얼룩말이 죽을 힘을 더 해 한 번 더 뛰면 목숨을 살릴 수가 있고 사자가 온 힘을 다해 한 번 더 뛰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했느냐 보다 어떻게 남은 시간을 마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숨이 가쁘고 지쳤을 지라도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나아가다가 주님을 뵐 때 큰 칭찬이 있을 것임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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